변화 없는 안전

영국의 2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1865년경 기존산업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이익집단의 요구에 의해 제정된 적기조례(赤旗條例: Red Flag Act)로, 자동차의 위험을 알린다는 기치아래 자동차 앞에서 마차에 탄 마부가 붉은 깃발로 신호를 해주었다. 당시 자동차는 시내에서 최고속도 3.2km/h, 시외에서는 6.4km/h 이하로만 주행하였다는 코미디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시점을 계기로 더 이상 빠르고 튼튼한 자동차가 불필요한 영국의 자동차산업은 미국으로 패권을 넘겨주는 단초를 제공했다. 또한, 1997년 영국 노동당 공약을 기원으로 2007년 제정된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은, 2023년 말까지 총 40건이 기소되어 그중 19건이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모두 소규모기업만을 상대로 이루어진 초라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국내에서는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제한속도 20~30km를 제정한 민식이 법을 시작으로, 안전속도 5030 제도의 도입으로 도로마다 매 10km 단위로 각종 제한속도가 혼란스럽게 지정되어, 속도제한의 근본목적이 무엇인지조차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모방한 중대재해처벌법도, 법인의 범죄가 경영자 개인의 범죄로 둔갑하는 이상한 형법 해석으로 변했으며,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만 상당한 부담을 주는 결과로 변질되었다. 한편 정부는 사망사고의 감축을 위해 안전문화의 향상을 비전으로 매년 10% 이상의 건설현장 추락사고 감축을 위한 계획을 최근 발표하였다.

위의 각종 제도와 규제의 근본목적은 국민의 안전이지만, 안전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안전)문화는 단순한 수단이나 단일요인에 의해 변화되지 않는 장기 프로젝트이며, 그러한 수단과 요인이 효과적으로 작동한다고 입증할 만한 근거도 찾을 수 없다. 사건사고를 줄이고 싶다는 의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매년 10%의 일정한 기울기로 사고를 감축하겠다는 난센스는 또다른 통계수치 조작기술만 늘어나게 된다. 반세기이상 사고의 주원인으로 지목된 인적오류와 안전문화(Human error & Safety culture) 요소는 억울하기만 할 뿐이다.

편향된 제도와 규제는 일부 이익집단에게 특혜는 주지만 대다수 국민의 안전은 더욱 위협받게 된다. 오죽하면 필요이상의 규제와 매뉴얼을 전부 걷어치우자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 않는가(Safety Anarchist, Sidney Dekker, 0ct. 30, 2017). 불확실성 요소가 대폭 증가하여 상호작용하는 현대사회에 더 이상 따라 하거나 모방하는 천편일률적인 대책만으로는 잠재적 사고요인은 증가하며, 변화된 상황에 통하게 하는 상황대응능력만 감소하게 된다. RS+2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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